멋진 스케쥴에 감사함이 넘친다.
1차답사지, 남산공원의 봄 향내! 가득가득 챙겨안고..
덤으로, 숙소 가는길 옹벽 만화언덕! 이름하야 Seoul Comics Road ZAEMIRO <재미路>.. 도로명이 참 재밌다.
작년 12월 명동역3번출구~남산초입 숭의여대까지 450m길에 만화길 조성.. 하고많은 서울의 나드리 명소에 또 추가될 듯.
명동! 명동교자(명동칼국수) 식당찾아가는길에..
남대문시장 포차 일잔~ 요런 쏠쏠함이 시티투어의 참맛이여
회장님^^ 늦게나마 생신 축하합니다.
윤(允;진실로 윤) 게스트하우스.. 서울팀의 열성!열정! 오래오래 기억해두오리다.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뇌리 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像 &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像..
윤주영 사진전 < 잔상(殘像)과 잠상(潛像) Lasting Images & Latent Images >
光化門 | 도심. 고궁코스 *1층버스 12,000원
국립중앙박물관-전쟁기념관-동대문시장(DDP)-창경궁-인사동~ 대강 요래 계획잡고..
국립중앙박물관-청자정(靑瓷亭)
국보 제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고려 忠穆王 4년(1348년)에 대리석으로 만듬. 고려인이 생각한 불교세계를 입체적으로 표현.
사면이 튀어나온 기단부에는 사자, 서유기장면, 나한 등이 장려하게 조각. 목조건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탑신부의 1~4층까지는 부처와 보살의 법회 장면이 총 16면에 조각. 지붕에는 각각의 장면을 알려주는 현판이 달려있고, 5~10층까지는 다섯 분 혹은 세 분의 부처가 조각. 상륜부는 원래의 모습을 알수없어 지붕만 복원. 이 탑은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일본으로 밀반출 하였으나, 영국 및 미국 언론인 E.베델과 H.헐버트 등의 노력에 의해 1918년 반환. 1960년 경복궁에 복원되었으나 산성비,풍화작용 등 보존상 문제점이 드러나 1995년에 해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년간 보존처리를 진행한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용산 이전개관에 맞춰 현재의 위치에 이전.복원하였다.
보물 360호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 (月光寺 圓朗禪師 塔碑)
충북 제천시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터에 있었던 신라시대 탑비.
890년(진성여왕 4) 건립. 전체높이 3.95m, 비신높이 2.26m, 너비 97㎝, 두께 24㎝.
통일신라 말의 고승 원랑선사(816~883)의 일생을 기록. 선사는 845년에 정식 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唐나라에 가서 佛法을 구했다. 귀국 후 충북 제천에 있는 月光寺에 초빙.. 선사가 세상을 떠난 7년 후인 진성여왕 4년(890)에 그가 머물렀던 월광사에 이 비를 세웠다.
원랑선사가 입적入寂하자 헌강왕은 대보선광大寶禪光이라는 탑 이름을 내려,
김영金潁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승려 순몽淳夢이 구양순체歐陽詢體의 해서체楷書體로 글씨를 썼다.
碑를 받치는 거북 모양의 대좌(귀부;龜趺) 위에 비몸(비신;碑身)을 올려놓고 그 위에 교룡蛟龍을 새긴 머릿돌(리수;螭首)을 얹은 구성으로
전형적인 완숙기 비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물 2호 보신각종(普信閣鐘)
하나의 몸체에 양쪽으로 용머리 장식인 고리(용뉴龍鈕)가 달려 있고, 몸통 한가운데는 세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다.
현재는 보물 2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보관 중이다.
오백 년이 넘도록 서울의 문이 닫히고 열리는 시간을 알려주던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 13년(1468)에 만들어져 신덕왕후의 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다. 그 뒤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현,탑골공원)로 옮겨졌고 다시 1536년 남대문 안으로 옮겨놓았다가 1597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절이 없어진 후 광해군 11년(1619) 보신각으로 옮겨져,
오전 4시에 33번(파루罷淚), 오후 10시에 28번(인정人定)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보신각은 종로구 종로 2가에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로. 보신각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이다.
광주廣州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고, 1413년 종루를 통운교(通雲橋, 종로 네거리)로 옮겼다.
1458년에는 새로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달았지만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된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다.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과 같은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다.
조선 후기까지 네 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한국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에 중건.. 1980년에 다시 2층 종루로 복원한다.
지금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자정에만 33번씩 종을 친다.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외 -
쉼터..거울마루
도솔의 신선한 발상!! '살아있네' 영상도 돋보이고..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뮤지엄아트버스쉘터 Shelter of Memories
억수로 좋아보였던 '버스정류장'
뮤지엄아트버스쉘터 Shelter of Memories.. 벽돌에 남긴 시간의 켜 &&.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 ..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드림,디자인,플레이)
을지로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컨벤션과 전시,공연,패션쇼 등이 상시 이뤄지는 디자인·창조산업 종합공간이다.
설계자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건축계의 아카데미賞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라크 50년생, 영국사람)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디자인장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등 5개 시설 총 15개 공간으로 구성.
개관을 기념해 간송문화전과 스포츠디자인전, 건축가 자하 하디드 전시회 등이 열린다.
혈세(321억원) 로 만들었다던 거대한 불시착 우주선 DDP. 듣던대로, 그 위용이 대단하더란 말씀. 또다른 서울의 명소로 자리매김할껴.
서울시티 순례~ 투어버스 순환시간은 22분,52분 30분 간격이다.
달랑 두군데 간보기에 12,000원
혹시나, 마음묵었던 DDP 개관기념, 간송문화재 전시!참관
참 지식인 전형필^^ 님과의 만남마저, 돌아볼 겨를없이..
택시로 광장시장.. 육회비빔밥 점심.
오리지날 집은 10여분 줄서기 순번.. 그맛이 그맛일낀데 아무집이면 어떠랴..
삼일문 (탑골공원, 파고다공원)
흥복사 원각사 보신각종 3.1운동<33인 손병희 선생..> 그 역사의 현장찾아 한컷
국보 제2호 원각사지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국보 제2호는 이곳 야외에 그대로 둔채, 국보 제86호 '경천사십층석탑'은 어찌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는지??..
世祖가 세운 圓覺寺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대리석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11)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興福寺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뒤인 1467년(세조 13) 완성.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瑞氣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솔도파窣覩婆]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 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제86호)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인사동 쌈지길 산책..
인사동 골목길에.. 찻집 '귀천 歸天'
어느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뭐뭐보다 더 좋았을 시간! 그시간이 바로 그 타임이라.
천상 詩人 천상병(千祥炳) 탐구.
*1930.1.29 일본에서 출생 ~ 1993.4.28 소천 *1949년 문예 '갈매기' 등단 *2003년 은관문화훈장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저승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詩集 요놈! 요놈! 요 이뿐 놈!(1991),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발표.
말년에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千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대우주의 精氣가 모여서 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
대우주는 넓다. 너무나 크다. 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우리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니옵니까?'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1993년 천시인이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별세한 후, 유고시집《나 하늘로 돌아가네》,《천상병 전집》발표.
2007. 5. 1일 천상병시인을 기념하는 제4회 천상병 예술제가 千시인이 별세하기 전, 10여년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제11회 천상병 예술제가 <2014.4.25~5.4>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단다.
천상 시인, 낙천적 시인^^
님의 작품들일랑
잠시 닮으려 애써보노니.
詩 소릉조 小陵調 - 칠십년 和일에 -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 한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나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1979년 시인의 나이 50세 때 발표.
歸 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幸福
나는 世界에서 제일 幸福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生活의 걱정이 없고 大學을 다녔으니 배움의 不足도 없고 詩人이니 명예욕도 充分하고
이쁜 아내니 女子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便安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不平이 있겠는가 ...
고홈직전, 서부역 '해단식'
이제 일상으로.. 매일 매일이 '어느 멋진 날'로 채워가는 날들이시길요.
김용택의 <죄>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 것 같은 그 독을 들고 아등바등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내 독 깨뜨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물 엎질러 착한 사람들 발등 적신 죄 더 크다.
시인 왈, 제 앞 가리려 살다 보니 베풀기는커녕... 이웃에 폐 끼치기 십상이었다고 뉘우친다.
네 탓만 하는 세상에서 드물게 착한 고백이다. 그런 반성에서부터 나눔과 베풂은 출발한다.
- 깊이 공감할 글이라 옮겼네요.
공주 갑사 종일민박집에서의 1박.. 그날이 벌써부텀 기다려집니다. -
'Dora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라] 계룡 갑사 나드리(2) (0) | 2014.07.22 |
---|---|
[도라] 계룡 갑사 나드리(1) (0) | 2014.07.19 |
[도라] 서울투어(남산유람) (0) | 2014.04.22 |
[스크랩] 여름정모*영동(물한계곡) (0) | 2013.11.22 |
[50대산] 협곡열차투어(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0) | 201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