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열차 투어의 '덤'치고는 과분한 덤이라고라.
오히려 '철암투어'에 겯드린 협곡열차 여행으로 표현함이 더 경우에 맞는 듯하다.
철암천 건너 두골산 산자락에 촘촘히 들어선 '삼방동 그림벽' 미로길 답사는 계속된다.
등목&멍멍이 그림의 우물. 석탄 산업이 한창 호황일 때 이곳 삼방마을에만 600여 세대나 와글와글 살았다던, 그때의 우물가.. 아낙네들 웃음소리 들리난닷.
강원탄광 폐업이후 광부들은 살길찾아 하나둘씩 떠나고.. 지금은 60여 세대만 황량한 이곳을 대책없는 삶터로 이어가고 있다 한다.
태백시가 2013년에 조성한다던 '태백광산역사체험촌'의 규모가 역사체험촌의 주인공인 이곳 삼방마을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까치발 가옥 재현 등 시설보다 사람 삶터가 먼저일낀데..
?석면 지붕에 석면 담장! 그리 곱지않은 주거환경으로 읽힌다.
담장아래 싱싱하게 자란 스티로폼 고추밭땜시 사람사는 집으로 보일 뿐..
몇몇 단정한 집도 보이고.. 고물과의 공존이라..
맥우들~ 무얼 담아 갔을까? 님 나다니는 그 길위에 이몸도 늘 함께 한다오.
비닐 우의(비옷).. 디기 덥겠다. 언제부터인가 비오면, 짱배기 건사할 우산하나면 닭상이라여
10여 점 될랑가.. 몇 안되는 그림들! 선듯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더란 말씀.
나름, '유인원-광부-바코드, 진화과정' & '몽땅 삼켜버린 하마' 그림이 각별했고.. 글고 화려함을 주제로..
'광부의 삶'을 우째 '하마'뱃속에다 왕창 넣어뒀을까? 삼킨 하마는 누구일까?
<'돈먹는 하마와 보낸 하룻밤' 강원랜드 정선 사북 갔다가 지갑 다 털려.. 2008 인터넷기사> 이런겐감
<고사목에 꽃피우다>.. 화려한 덧칠그림으로 메꾼 갈라진 벽틈새~ 님도보고 뽕도따고!! 그런겐감.
몇 점 아닌 그림벽이나마, 철암 탄광촌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의 삶~ 이렇게 역사는 흘러가고..
삼방동 그림벽이랑 헷갈린 상장동 벽화마을이야기 옮겨둔다. 혹여 다음 때 그려두며..
* 태백시 황지동 문곡역 위아랫길에 소재한 함태광업소 사택촌 '상장동 이야기마을'이다.
철암과 상장동.. 철암이 잿빛의 꼬리를 밟고 있다면 상장동은 닫혔던 이상향의 문을 열고 있는 분위기라.
외지인들에게는 동일 시간대에 상이한 역사를 경험할 귀한 공간들이라 하니 더욱 가보고접어진다. 글고
가끔씩 들어봤던 광산 이야기속 캐릭터 <꿀복이=신입광부/만복이=탄광촌 강아지/다복이=광부의안전지킴이 쥐(서생원)/도깨비=부와행운을 준다는 전설의 도깨비> 에다, 전설이야기마을 들어서면 '할미꽃,황부자,도깨비,무궁화'길이 열려있고.. 탄광이야기마을엔 '만복이,굼베리이야기,탄광아버지&어머니, 광부의하루'라 이름지어진 길들이 그림벽으로 마중하고 있다 한다..내삶의 즐거움 하나 더, 탄광촌 태백의 이해에 기똥찬 기사 <잿빛 이상향, 태백>.. 이또한 고히 옮겨둔다.
'이상향 태백은 오랫동안 잿빛이었다. 잿빛은 부富의 색깔이었다. 몸만 조금 고단하면 부가 보장됐다. 고단한 시절, 전국에서 몰려든 사나이들은 태백에서 거금을 손에 쥐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도 사내들이 주로 몰려왔다. 신입 광부는 '햇돼지'라고 불렸다. 미래의 부를 거머쥘 새끼 돼지라는 뜻이다. 쫄딱구댕이라 속칭하던 갱도坑道로 작업반이 들어갈 때면, 햇돼지들은 쥐 한 마리와 동행했다. 위험이 감지되면 쥐들이 먼저 알아차렸다. 쥐는 돼지들에게 생명이었다. 탄광에서는 허파 속 탄 먼지 씻어내라고 돼지고기 전표를 나눠줬다. 쌀전표도 나눠줬다. 돈을 찾아 날아온 여인들은 사내들 품에 안겨 술을 권했다. 삼수령 고개를 스치는 바람에 자작나무숲이 몸을 떨었다. 삼수령과 구문소 사이에 있다는 이상향, 태백은 탄광으로 흥했다가 오래도록 잿빛에 묻혀 있었다. 지금은 탄광의 흔적과 태고의 자연을 찾아 여행객들 발길이 잦아졌다. (중략).. 제일 컸던 요정 대구관은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 청정수를 펑펑 써가며 술과 웃음을 팔았다. "태백에서 기생 안해보고 서울기생 절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탄 먼지 자욱한 비포장이었으되 개도 천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 할 만큼 풍요로웠다. 이상향이었다.
처음, 시간이 멈춘 거리에서 휑한 철암시장 둘러 철암천 건너 산자락에 오똑하니 그림벽 하나! 삼방마을길 안내해주었던 그림이라 ..
이정표..안내판이 따로 필요치 않다. 비오는날 하얀 벽에 산뜻한 꽃그림 하나만으로도..
돌아나오는 길에, 썰렁한 시장풍경 한컷 남기고..
'까치발 건물이 새롭게 탄생합니다' <태백 광산역사체험촌 공사 안내>
광산 개발당시의 생활환경이 그대로 간직된 까치발 건물 11동, 내부를 생활사 박물관 및 유명작가 설치미술 중심의 아트하우스로 개조.
공사기간 <2013.4.10~11.29> 2013. 11월 말 준공때 쯤 확 달라져있을 까치발건물 거리. <재건축된 까치발 건물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에 공감하며..>
이렇게 한발 한발 새로움으로의 환원! 그 발돋움의 흐름속에 고단한 사람들의 삶터 '삼방마을'도 함께였음 좋으련만..
석탄 산업이 호황이던 때, 철암동 역 앞 삐까번쩍의 중심건물이였을
'까치발 상가'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철암역 건너편 철암천변, 신설교 좌우로 앙상한 '까치발 건물' 두루 담아둔다.
철암역방향 까치발 건물은 아랫도리만 남겨있고..
신설교 건너에서 한컷.. 철암역 옹벽아래 '유카셰어링 렌트 택시' 12대, 총집결된갑다. 하기사 철암투어엔 부적합이란 생각.
시티투어버스에다, 15분마다 노선버스 빙빙돌제.. 태백택시 콜하면 거의 5분이내에 도착하제, 콜비 없는 착한가격이라..
오른편 길따라 올라가면 '삼방마을 그림벽 미로길'.. 이쪽길이 안내된 '삼방마을' 입구라고라.
탄광촌 철암의 보물! 신주단지 모시듯 '무연탄 보듬어 받든 두 손'
철암지역 특징인감.. 우째 안내판이 없지비. 이 작품 역시 철암 외지 '조형예술가'들 솜씨인 듯. 석탄박물관 입구 조형물로 강추!
제법 쓰임새 좋을법한 산책길인 듯한데.. 길은 철암천변으로 이어지고..
철암역사 건물 주변으로..
'애향철암 愛鄕鐵岩' 향후 관광도시로 우뚝 서있을 철암! 그런 철암 함 그려본다.
'두멧길 특산품 판매장' 전광판은 돌아가고..
점심은 철암부녀회 운영 '철암두멧길식당'. 비오는날엔 요런 탁트인 천변 천막식당이 더욱 좋은듯 하다.
메밀부침개..도토리묵에다 태백장성막걸리 캬 ~ 글고 양껏 취나물비빔밥..
이렇게 익어간다. 님들속에 이몸도 있고..
용궁으로 통하는 문 '구문소求門沼'
낙동강 상류 황지천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깊은 소를 이룬다. 이 沼는 고생대에 석회암이 용해되어 생성된 것으로 추정..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하여 '뚜루내'라고 부르기도.. 주위의 낙락장송과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일품이다.
*자개루子開樓.. 올라서면, 마당소 삼형제폭포 닭벼슬바위 등으로 불리는 구문팔경을 볼 수 있다.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엄종한의 용궁전설이 전해진다.
*삼형제 폭포.. 옛 폭포 윗쪽서 삼형제가 물놀이 하다 떨어져 익사.. 삼형제가 다 용이 되어 승천, 그때 용이 승천하며 바위절벽을 치고 올라가서 생긴 것이라고라.
태백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전국 유일 고생대 지층위에 건립된 고생대 주제 전문박물관으로 다양한 산출을 보이는 직운산층 등이 산재하여 박물관 상설전시관람 및 현장체험 가능.
천천穿川 석회동굴 구문소求門沼 (천연기념물 417호)
태백시 동점동.. 동굴 가까이 이르니 흘러 나오는 성난 물굽이..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태백 黃池의 물이 산을 뚫어 생겼다는 신비로운 비경을 만난다.
이 석회암 동굴을 '子開門'이라 하는데, 자개문 안쪽 밑 벽, 물에 잠길듯 '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이란 글이 새겨져있다. 정감록을 축약한 이 글은,
<낙동강 최상류에 올라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오고 삼재(전쟁,기근,질병)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나타난다. 이 석문은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문이 열려 그 속에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는 무릉도원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구문소를 매우 신성시 했으며, 자개문을 통하면 태백의땅(소도의땅)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구문소 왼편 구멍뚫린 석문은 1937년 일제강점기, 태백시로 들어가는 석탄 보급로였다고라.. 이웃해있는 동점터널도..
구문소에 얽힌 전설이라기보다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 하나.
이야기는 이렇다. 이 고을에 살던 어부가 이곳에서 백병석白餠石을 가지고 온 이후로 용궁으로 통하는 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다.
약 350년 전, 이 못 부근에 嚴宗漢이란 어부가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하루는 못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만 실족하여 물에 빠지고 만다. 엄종한이 깊은 물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며 이젠 죽었구나 체념하는 중, 그는 또다른 세계에 와있음을 깨닫는다. 이상야릇한 향내속에 인어들이 너울너울 춤추는 별천지, 용궁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용왕 앞으로 끌려와 심한 문초를 받는다. 엄씨의 죄목은 용궁의 닭을 잡아갔다는 것인데, 그가 늘 잡던 물고기가 바로 용궁에서 기르던 닭이었음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런데 부모에 대한 효행은 그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모양이다. 엄종한이 부모 봉양을 위해 고기를 잡았다고 아뢰자 용왕은 노여움을 풀고 오히려 거창한 주연까지 베풀어 주면서 인간세계로 되돌려 보낸다.
엄씨는 흰 강아지의 안내로 물 밖 곧 인간세계로 나올 수 있었는데 떠날때 음식상에 놓인 떡 하나를 몰래 집어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굶고 있을 노부모를 위해서인데 물밖으로 나오자 그 떡은 돌처럼 굳어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 돌이 조화를 부릴 줄이야. 엄씨는 돌을 무심코 쌀독에 넣어 두었는데 독의 쌀이 퍼내어도 퍼내어도 절대 줄지 않는 요술을 부린 것이다.
용궁에 다녀온 효자 엄씨가 졸지에 큰 부자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이 돌떡을 후세 사람들은 '백병석'이라 부르는데 그 보물의 행방은 지금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한양조씨에게 시집 간 딸이 빌려 갔다는 소문이 있고, 또 다른 딸이 쌀독 째 훔쳐 가다가 황지천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져 다시 용궁으로 되돌아갔다는 소문도 있다. 만약 그 백병석이 실제 남아 있다면 구문소 엄씨 이야기는 전설이 되지 못했으리라. 이런 이유로 하여 용궁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구문소에 와 보면 한번쯤 못 속으로 빠져들고픈 충동을 느낀다.
같은자리 다른느낌! ~껏들 삽세.
다시, 석문을 향하여..
아치형 석문 바로위에 각자刻字. <우혈모기 禹穴牟奇>
이 글은 일제강점기 석탄광산을 개발하면서 뚫은 굴의 개통기념으로 '禹穴牟奇'란 글을 남겼는데
그 뜻은 '어쩌면 우왕이 뚫은 굴과 기이하리만큼 가지런하게 닮았을까?'하는 자화자찬 격의 글이란다.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도 있어 헷갈린다. 이야기인 즉
'구문소 옆에 있는 석문은 옛날 울진.정선.봉화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반드시 子時에만 열렸기 때문에 子開門이라고도 불린다.'
구멍높이 8m ? 구멍폭 2m.. 보는대로.. 보이는대로
석문 지나.. 뒷길에서 웅장한 그림 잡아본다.
시원하게 뚫린 태백로, 태백시 들어가는 방향으로..
*구문소의 지질은, 고생대 후반기 석회암의 퇴적으로 각종 암석 <乾裂구조, 물결흔적, 스트로마톨라이트, 새눈구조, 소금흔>과 생물화석<삼엽충, 두족류, 부족류, 암몬조개> 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생대 시기에 한반도는 바다밑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하야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의 체험학습현장으로 적극 활용되기도..
*고생대 시기의 한반도는 위도상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고지자기古地磁氣를 측정한 결과, 한반도는 5억년전에는 적도 밑 남위 20~30(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 위치하였다가 고생대~중생대 초에 현재의 위치(서울의 위도= 북위37도34분8초, 동경126도58분36초)에 이르게..
<삼형제폭포> 황지천 물이 이곳에 와서 용소를 거쳐, 세갈래 작은 폭포를 일컬어..
*옛날 폭포 위쪽에서 삼형제가 물놀이를 하다가 떨어져 익사하야 삼형제 모두 용이 되어 승천.. 그때 삼형제 용이 승천하며 바위절벽을 치고 올라갈 때 생긴 것이 바로 삼형제폭포라고라. 경상감사가 1571년(선조 4) 12.18. 辰時(7~9時; 용들이 날면서 강우 준비하는 시간)에 낙동강 상류 물이 끊어졌다고 장계를 올리자 이때부터 민심이 흉흉해졌다. 전하는 말에 낙동강 물이 끊기면 국가에 큰 난리가 난다고라. 이것을 낙동강의 絶流라 하며 지금의 龍沼 위에 있는 삼형제폭포의 물이 끊겨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선조실록에 기록된 사실로 그 후 임진년에 왜군이 처들어와 강토를 유린하자 백성들은 구문소의 영험함을 확인하였고 신령스런 곳으로 두려워하였다 한다.
삼형제폭포&용소 주변 물흐름이 심상치 않다. 바닥에 물길을 훼오리치게 만드는 뭔가 있는듯..
<통소와 사다리굴> 여물통 같이 길쭉한 沼라 하여 통소라 하며, 태백의 모든 물이 이 좁은 통소를 통과하기 때문에 물살이 엄청 세다. 통소 위를 바라보면 사다리굴이 보인다.
아마도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는 사다리굴로 황지천의 물이 흘러들어가 내부에 커다란 동굴이 생기게 되었고
동굴 외벽은 홍수 때마다 급류에 휩쓸린 바위나 커다란 나무들이 계속해서 충격을 주어 작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여 지금의 구문소가 생겨 났으리라고 여겨진다.
앞쪽 초록밭은 구문소?자연사박물관 공원일끼고, 아치형 빨강다리는 자개루 가는 다리렷다.
비구름 & 물살 쎈 물길과 앞쪽 풍경이 어우러져.. 한폭 그림으로 보여준다.
[구문소 자연학습장] 이곳 일대 지층이 고생대의 암석&화석 지층으로 형성된 보물창고라하니.. 곧장 내려서고접은 충동이..
이 구역은 약 4억6천만년전 퇴적된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 퇴적암층(조선누층군 막골층, 직운산층, 두위봉층)으로, 당시 살았던 생물들이 화석으로 암석내에 보존되어,
우리나라 고생대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서 문화재청으로부터 천연기념물 제 417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한다.
공원 산책로, 석문 배경으로 잘 배치된 풍경 담아둔다.
산책로 건너 도로 '동점터널'도 땡겨잡고..
천천穿川 구문소求門沼- 권만權萬(1688~1749)의 글이다.
- 구문소 드센 물굽이 비경 바라보는 느낌은,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별 다를바 없는 것 같다. -
< 좁고 답답한 골짜기는 귀신 도끼질로 뚫은 것이 틀림없는지라 / 돌문은 둥근 무지개 모양으로 뚫린 골짜기에 걸려 있네
천둥치듯 소리내며 오랜 세월동안 세갈래 폭포는 쏟아졌고 / 눈처럼 하얗게 물보라 일며 천길 아래에서 한줄기 냇물로 흘러 갔네
용의 기운은 웅덩이에서 비를 뿌리려고 비릿한 입김을 뿜어데지만 / 햇빛은 절벽에서 이는 물안개로 하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네
사람들이 제 아무리 담이 커 겁이 없다해도 마유산 꼭대기에 있는 벌통에는 / 오직 날 수 있는 새들만이 날아 들고 있을 뿐이네 >
<구문소의 전설> 곧 날아오를 것같은 龍 조형물! 여의주랑 챙길껀 다 챙겨있다.
전설인 즉, 옛날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 석벽을 사이에 두고 황지천과 철암천에 큰 소가 있었는데 황지천에는 백룡이,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면서 늘 석벽 꼭대기에 올라가 낙동강 지배권을 놓고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하루는 백룡이 꿰를 내어 석벽을 뚫어 청룡을 제압하여 오랜 싸움을 끝내고 승천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구문(구멍) 소가 생겨나게 되었다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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